김학순할머니

artworks 2019.06.25 08:43 |

 

 

 

 

이번그림은 <김학순 할머니>입니다


1924년출생
17세에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하셨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대한민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최초로 공개증언을 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하셨습니다.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첫번째 일입니다. 

당시의 보도사진을 보면 눈을 감고 울고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후 국내 피해자는 물론 필리핀,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의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를 기려 2012년 12월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 회의'에서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증언을 했던 8월 14일을 기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2018년 대한민국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인권운동가로서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데 여생을 바치셨으며 

1997년 12월 8일 평생모은 약 2천만원을 ‘나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기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난 1997년 12월 16일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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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할머니

artworks 2019.04.16 10:18 |






<이용수할머니>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는 2007년 미국 의회 청문회 참석 증언을 하셨던 이용수 할머니, 고 김군자할머니, 얀 루프 오헤른(네덜란드)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실제 미국 의회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위안소로 끌려가 전쟁을 통해 직접적인 피해를 받으신 할머니들의 모습을 기록중입니다. 보아주시고 읽어주시면 너무나도 감사한일입니다.

어떠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전달하고자 하는것은 아닙니다. 저로서는그냥지나칠수없는 개인적 경험과 맞물려서 관련되어있는 사실들과 인물들을 조사하고 관련된 작업들을 정리하면서 그림으로 기록하는중입니다.#위안부#길원옥할머니#전쟁과여성#이용수할머니#아이캔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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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엽 할머니

artworks 2019.04.07 13:24 |

 

 

 

 

 

공정엽할머니

 

1920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6세되던 1935년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서

24세가 되던 1943년까지 모질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1945년 해남으로 귀국해 결혼했지만 남편이 사망하고 

자식을 홀로 키우며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할머니는 2016년 5월 17일 96세로 별세하셨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때 일본정부헌티 사과도 받고

앞으로 전쟁같은 몹쓸짓 절대 안한다고 약속도 해주면 좋겄어”

-공정엽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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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록과 자료를 수집중 발견한

'안세홍사진작가'의 사진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뭐라 간단히 표현할수없을 만큼의 삶과 슬픔이 느껴집니다.

지도를 만지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박대임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감동을 받아

그림과 간단한 영상으로 기록을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박대임할머니

박대임할머니, 1934 22 위안부로 차출 , 1957 중국에서 받은 외국인 거류증을 평생 소중히 간직하셨습니다.

서류는 자신을 증명할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한시도 고향을 잊어 본적 없다며, 지도를 만지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죽어서라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하셨습니다.

박대임 할머니는 2007년경  중국의 오지에서 쓸쓸히 돌아 가셨습니다.

 

<박대임할머니, 고향을 지도에서 찾으며 그리워하는 모습>

 

 

 

 

 

안세홍 사진작가의 행동과 전시에 관한 기록을 가져와 봅니다

 

안세홍 사진작가는 20여 년 간 아시아 각지에 남겨진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마주했다. 

그네들의 모습 속에 담긴 진실을 순간순간 사진으로 포착했다. 

깊게 패인 주름, 글썽이는 눈망울, 한 맺힌 목소리는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삶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작가는 그 증명과 진실의 기록을 ‘겹겹’이라는 제목으로 엮어 사진전을 연다.

 8월4~16일 서울 통의동 류가헌에서 열린다.

‘겹겹’은 피해 여성들의 깊게 패인 주름이자 70년 동안 가슴에 쌓여 온 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풀리지 않는 역사의 과제를 의미한다. 

1996년 잡지사 화보작업 차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나눔의집을 방문했던 

작가는 그곳에서 할머니들의 한을 만났다. 

그 후 3년간 나눔의 집을 드나들며 봉사활동 했다. 

할머니들의 마음도 렌즈에 담았다.

2003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사진전을 연다. 

사람들의 작은 힘을 모아 역사를 알리기 위한 강연회, 

의료지원 등을 추진하는 ‘겹겹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겹겹프로젝트는 ‘위안부’라는 이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됐다. 

작가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후원이 관심과 열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다행히 동참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번 전시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한 ‘희망해 펀딩’과 

전시 프리뷰를 통한 모금,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마련됐다. 

지난 2013년 류가헌에서 진행한 동명의 전시회를 통해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상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야를 더욱 넓혀 아시아 곳곳의 피해 여성들을 담았다. 

각 국가의 고유하고 강렬한 색감을 통해 

그들의 응어리진 삶을 압축해서 표현한 점도 이 프로젝트의 진화를 보여준다.

안세홍 작가는 여전히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녀들은 병들고, 혼자서는 무엇조차 할 수 없는 몸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의 기억과 눈물이 아니라 

이제는 모두의 역사와 인권으로 남아야 한다.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메시지는 70여 년 전 과거가 아닌 

우리에게 전하는 미래의 메시지다.”

그는 자신의 행보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그들의 문제는 현존하는 역사이며, 

모두의 문제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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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점순할머니

artworks 2019.03.26 14:24 |


안점순 할머니(1928~2018)

안점순 할머니는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1941년 중국으로 끌려가 1945년까지 위안부 피해를 봤습니다.

이후 1946년 귀국한 안 할머니는 강원도와 대구 등에서 살다가 58살이던 1986년부터 수원에서 거주해왔습니다. 1993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안 할머니는 2002년부터 본격적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셨습니다.


수원시는 할머니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주고자 할머니의 삶을 다룬 헌정 영상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제작해 지난 8일 공개하기도 했으며. 안 할머니는 당시 영상에서 “억만금을 우리한테 준들 내 청춘이 돌아오지 않는데, 가해자(일본 정부)는 자신의 죄를 모른 채 당당하고, 피해자인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다”며 일본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2018년 3월 30일 안점순 할머니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9명으로 줄었습니다. 올해(2018년도기준) 안 할머니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원시에서 유투브 계정에 올린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영상 링크입니다

https://youtu.be/AClu6xkn4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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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인성영재학교 1 졸업생 신채은 (19) 지난 26 인천 연수구 여성의 광장에 열린 '2016 & 진로 토크콘서트'에서 발표한 내용 일부입니다. 



SNS 하다 우연히 이화여고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100개의 고등학교에 100개의 작은 소녀상을"이라는 캠페인을 보게 됐어요. 학생들의 힘으로 50만원 상당의 돈을 모으면 '작은 위안부 소녀상' 세워주는 캠페인이죠. 이것이야말로 우리 손으로 직접 있는 활동이라 생각했어요."



시작을 하고 모든 반을 돌아다니며 우리의 뜻을 알리는 글을 낭독했어요.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우리와 같은 시기에 아픔을 겪으신 위안부 할머님들을 기억할 있는 우리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있는 일은 그들의 아픔을 기리고 기억하는 것이다. 학교 안에 학생들의 힘으로 소녀상을 세운다면 우리는 교내에 새로운 역사를 있을 것이다" 말하자 많은 아이들이 공감하고 동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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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선할머니

artworks 2019.03.20 12:48 |


이옥선할머니(1927.10.10.)는  부산 출생입니다.
15세에 위안부로 연행되었고 그후 중국 위안소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해방 후 첫 번째 남편과 결혼 실패후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셨는데
남편에게는 지적장애 아들이 있었습니다.

결혼 당시, 나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고백했더니, 남편께서 '그런 것은 상관없다. 있는 애를 잘 키우면 제일이다'라는 이야기 하셨고

그후 이옥선 할머니는  온 마을의 아기를 받아주는 산파, 노상 등 여러 일을 하면서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여러 식구를 홀로 먹여 키우셨습니다.



참으로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할머니 입니다.



“(시집갔는데) 집은 산골집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없고 그런 집이야 곤란한 집이야.”
“그래도 하나 있는 자식이라 남한테 안 빠지려고 얼마나 열심히 키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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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y graphic designer 2019.03.20 17: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거 gif가 오류네요....

'나는 93세 피해자 김복동


군복을 만들어야한다. 일손이 모자라 공장으로 가야한다. 

만약 거역하면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한다.


그런데 사실은 군인들을 상대하는 위안부로 가게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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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할머니의 음반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발매당시

타이밍을 놓친것인지 현재로 방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검색으로는 나오질 않아 안타깝습니다



작업을 위한 자료수집차 

관련활동하시는 분들께 인터뷰요청도 드려야할거같습니다


진심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곁에 계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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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 할머니

artworks 2019.03.08 23:11 |




<길원옥할머니의 노래> 2019. 디지털페인팅. 한성원


길원옥 할머니의 노래소리는 참 좋습니다. 가만히 듣고있으면 행복감도 들고 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활동해주세요. 아래의 글은 길원옥 할머니의 인터뷰 영상에서 발췌한것입니다. 






“노래가 있는 곳에는 웃음이 있는데 쓸 데 없이 앉아서
남의 흉이나 보다간 웃음이 없거든. 그러니 노래가 좋지. ”


“제가 겪은 게 조금 아프면 안 할 텐데 많이 아팠거든요.
내 후손들은 절대 나같이 당하지 않고 좀 편한 생활 살았으면 좋겠다."







(블로그에 그림을 올려두고나서 몇번이고 다시 보게 됩니다. 그렇게 보다가 뭔가를 발견하면 다시 그리고 수정하고 그림을 교체해놓고... 이 그림은 어제 밤에 올려놓은뒤 지금 네번째 교체중입니다.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고 그리지 않을때 게다가 또 형태적으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때, 또 정갈하면서 딱 떨어지는 그림을 그릴때.... 이러한 조건들이 합쳐진 그림을 그릴때면 여러차례 재작업은 필수입니다.) 



Posted by hy graphic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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